하나서비스

고객전화번호 안심보장해 드립니다.
관리자 2013-03-12 9521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삶에 대한 넋두리를 풀며 술 한잔 얼큰하게 걸친 모 중소기업 김 과장. 귀가하기 위해 단골 대리운전 회사에 전화를 걸어 대리운전을 요청했다. 5분 뒤, 배정된 대리기사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왔고 김 과장은 현재 자신의 차가 있는 위치를 설명해줬다. 기사는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거란다. 도착하면 전화하겠지란 생각에 술 자리에 앉아있는데 정확히 5분 뒤 전화가 걸려온다. 

김 과장은 "금방 가겠다"고 말한 뒤 통화를 끊었는데 친구들을 보내고 하다보니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대리기사한테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가고 있다"고 하며 통화를 끊으려는데 대리기사는 "제가 고객님 전화번호를 모르니 도착하시면 전화주세요"한다.

무심코 그렇겠노라고 대답하고 끊었는데 문득 "내 번호를 모른다면서 그럼 그동안 나한테 어떻게 전화를 한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리운전 기사는 정말 고객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고객이 대리운전을 요청하면 회사에서는 해당 고객의 전화번호를 가공의 '임시번호'로 만들어 기사에게 전송한다. 

예를 들면 김 과장 휴대전화 번호가 '010-1234-5678' 이라면 대리기사에게 전송되는 번호는 '0505-765-4321' 이런 식이다. 기사는 이 '임시번호'로 전화를 하기 때문에 고객의 개인 전화번호를 절대 알 수 없다.

이 번호 고객을 만나 이동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후 사라진다. 혹시 고객이 대리운전을 취소시켜도 번호는 없어진다. 이는 모바일 솔루션 기업인 아이콘소프트가 개발한 대리운전 업체를 위한 운행관리 프로그램으로 고객 휴대전화 번호 대신 가공의 임시 전화번호를 대리운전 기사에게 통보하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올 초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임시번호'를 사용하는 것일까.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고객 보호와 정보 노출을 막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객 이탈 방지를 위해서다.

우선 고객 입장에서는 술을 마시기 때문에 대리운전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부를 때마다 바뀌는 대리기사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와 차량번호, 집이 노출되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특히 고객들은 술 김이나 대리운전 기사의 운전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요금, 행선지, 교통법규 준수 문제 등을 놓고 가끔 싸움을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분을 삭히지 못한 기사들이 손님에게 다음날까지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리운전 회사는 이런 일들을 방지하고 고객의 개인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 '임시번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하나는 대리운전 업계가 우후죽순 늘면서 업체간 고객 빼가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대리운전 업체에서 기사로 일하던 직원이 고객들의 전화번호를 모아두었다 별도로 회사를 차려 나가면서 그 고객들을 자신의 회사로 끌고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임시번호'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이런 일은 사실상 힘들게 됐다.

▶불황… 대리운전도 죽을맛

취객들이 늘어날수록 신나는 일터는 대리운전 회사다. 하지만 경기불황 탓에 대리운전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지난해는 평일에도 30∼40건의 콜이 계속 떠 있었는데 요즘은 대리운전 요청 콜을 먼저 잡으려 눈에 불을 켠다. 물가와 대출금리가 뛰고 경기가 안좋다 보니 술 마시면서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비싼 기름값과 차량 5부제 등의 시행으로 자동차 운행이 다소 줄어든 데다 술 자리가 있는 날은 아예 차를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늘었다.

또 대리기사를 부를 때와 택시를 탈 때의 경제적 이익을 꼼꼼히 따지기도 한다. 대리기사를 부를 경우 '기름값+대리운전비'가 소요되지만 택시를 타면 웬만한 곳은 대리운전비 정도로 왕복이 가능하고 기름값도 아낄 수 있어 고객 입장에서는 일석이조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고객차 1대 당 5천원 정도를 수익으로 계산한다. 회사에서 '00지역에서 대리운전 요청'이라는 문구가 뜨면 가장 인근에 있는 기사가 자신이 가겠다고 표시를 한다. 이것을 '콜을 잡는다'고 말한다. 1콜을 잡으면 2천500∼2천800원을 회사에 납입한다. 그리고 1천800∼2천300원은 고객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때 드는 택시비다. 

대리운전 기사를 주업으로 삼는 A씨는 밤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뛰면 4만5천원 정도가 손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밥값 떼고 집에 귀가할 때 택시비 떼고 하면 겨우 3만5천원 정도가 남는다.

대리운전 기사 A씨는 "경기 불황 탓에 삶이 힘겨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많은데 대리운전을 부르는 손님은 줄었다"며 "교통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에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